공대에 있으면서 제일 힘든 것 중 하나가 음악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. 대중들이 자주 듣지 않는 장르의 노래를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면 반응이 그냥저냥 들어주는 정도에 그친다. 이런 환경에 있다보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공유하지 못 하는 답답함이 가득해진다. 그렇다고 음악 이야기를 포기하지는 않는다. 내 음악 얘기를 종종 꺼내며 한번 체험해보라고 권유하고, 다른 사람들이 듣는 노래도 들어보며 계속해서 음악 얘기를 시도하려고 노력한다.
시도한다고는 했지만 한 켠으로는 포기한 것도 사실이다. 상대방이 즐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고 음악 이야기도 그냥 일상적인 시간 때우는 이야기로 여기게 됐다.
연구실 친구 2명이 집으로 놀러와 함께 술을 마시러 왔고, 술을 마시기 앞서 내가 치는 피아노를 듣고 싶어했다. 이제 배우기 시작한 지 4개월 가량?된 피아노를 친구들 앞에서 쳤고 다들 많은 칭찬을 해주어서 기분이 좋았다. 한 명은 내가 1개월 전에 쳤던 곡을 다시 쳐주니 감탄하며 1개월 사이에 엄청나게 달라졌다고 칭찬해주었다. 한 명은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피아노를 치는 친구인데 4개월에 이 정도로 성장한다는 사실에 놀라며 칭찬해주었다.
아직 한참 모자르지만, Philip Glass의 Opening을 쳤고 다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을 조금이나마 느꼈던 것 같다. 아마도? 그런 순간을 만들 수 있다니, 더 노력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샘솟는다.
이후 같이 술을 마셨고, 어느 순간 내 플레이리스트 자랑 시간으로 넘어간다. 대중 픽들을 처음에 틀기도 하고 내가 강제로 즙 짜려고 듣는 노래도 공유해주었다. 다들 이 노래 들으며 혼자 술 먹는 내 모습에 안타까워 해줬다.
Slowdive - Here she comes
King Crimson - I talk to the wind
이후 욕심이 생겨 아스트랄한 곡들도 틀었다. 생각 외로 반응이 좋다. Ulrich Strauss - A strangely isolated place 곡의 경우 한명은 노래 제목가 너무 잘 어울리는 노래라며 감탄하면서 들었고, 술 마신 다음 날 카톡 프로필 음악으로 지정했다. 다른 친구도 좋아했으며 그 친구는 독일인이라서 Ulrich Strauss의 R 발음을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줬다. 혀 트릴도 못 하는데 목 트릴이라니,,, 여러 번 시도했지만 실패했다. 재미있게도 같은 앨범에 있는 Blumenthal이라는 곡이 제목이 자기 독일 고향 옆 도시라고 한다. 검색해보니 음악가도 자기 동네 근처 출신이라고 한다. 별로 대단한 정보는 아니지만 음악 대한 지식이 풍부해지는 것 같다.
그 다음은 조금 더 막나가서 Mars Volta - Cygnus…Vismund Cygnus를 들려주었다. 한 명이 무진장 좋아한다. 전혀 통할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. 카톡으로 음악 링크를 보내주었다.
그 다음은 최근에 추천 받은 곡인 Krzysztof Penderecki - Zmartwychwstanie II. Stichira를 틀었다. 그냥 진짜 막 나가자는 마음에 들려주었는데 독일인 친구가 매우 흥미로워 한다. 그리고 또 즐긴다. 나도 딱 그 정도 감정으로 듣는 노래인데 그렇게 음악을 들어주니, 분명 음악에 대한 감정이 공유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.
몇 주 전 이야기이고 이제 예전처럼 무신경하게 좋아하는 노래를 공유하지는 않는다. 내가 좋아하는 그 감정을 가득 담아 추천해주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. 즐거운 일이다.